영화랑 놀자

'나의 왼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8.12 나의 왼발

나의 왼발

영화 이야기 2008. 8. 12. 01:21

감동적인 영화라는 이야기는 오래 전에 들었는데,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다.

크리스티 브라운이라는 뇌성마비 환자의 삶을 그린 영화이다.
왼쪽 다리와 발만 움직일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왼발로 글씨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나중에는 타자기로 자서전까지 쓴다.

크리스티의 주변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람은 어머니이다.
불구의 아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치 정상인인양 인격적으로 대해 주고, 마음을 이해해 주고, 무언가 하려고 하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돈 이야기가 아니다. 마음을 말하는 거다.
참 훌륭한 어머니이다. 주인공이 자살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게 된 데에는 어머니의 헌신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 것 같다. 그리고 많은 형제들.

크리스티는 감정 표현이 참 솔직하다.
이런 저런 계산 없이, 말하자면 자기가 보통 사람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아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골치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알 텐데도 감히 사랑을 고백한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 본다면 병신이 꼴값한다는 소리 듣기에 딱 좋을 행동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한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기와 타인을 비교하지 않는 단순하고 순수한 면도 있겠지만, 외로움이 싫고, 한 남자로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에게는 보통 일이겠지만(사실 그다지 보통일도 아니다. 힘겨운 일인 것 같다), 크리스티에게 있어서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전문의 아일린에게나 간호사 메리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눈빛이 내 가슴을 다 철렁하게 만든다. 솔직히 무섭다. 어떤 장애인이 나를 그런 눈으로 보면 어쩌나 하는 고민까지 하게 만든다. 그만큼 그의 눈빛이 솔직하고 절실했기 때문이며, 거기에 응한다는 게 얼마나 큰 짐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하는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그런 눈빛은 눈빛을 받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발가벗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 눈빛 앞에서는 좀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며,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장애인들 같은 외골수의 사람에게는 작은 친절도 큰 의미를 갖게 되고, 사소한 대화도 존재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로 연결되기 쉽다. 크리스티에 대한 아일린의 사랑은 그냥 인간적인 사랑이었을 뿐 이성적인 사랑이 아니었는데, 크리스티도 그걸 알면서 자신을 완전히 받아주지 않는다고 화를 낸다. 그런 식의 행동은 인간적인 사랑까지 잃게 만들 수 있다.

메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데이트 상대가 있다는데도 굳이 그에 대해 묻고, 가지 말라고 한다. 크리스티의 행동반경이 좁다 보니 결국 접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느끼는데, 이건 좀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에 대해 무언가를 이해하고 공감대를 이루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사람이 우연히 거기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에 대해 너무 비판적으로 냉혹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내 솔직한 생각이다.  크리스티가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있어서 솔직하기는 하지만 미성숙한 게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메리가 크리스티를 다시 찾아오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크리스티가 원하던 대로 사랑받게 되며, 결혼까지 하게 되어 다행이다. 메리가 착한 여자인 것 같다. 왼발가락에 꽃을 꽂아 메리에게 선사하는 장면은, 어쩜 선사한다기보다 구애한다는 의미가 더 크겠지만, 아무튼 크리스티로서는 최선을 다한 멋진 프로포즈였다. 온 힘을 받쳐 사랑을 얻어낸 크리스티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브 어페어(Love Affair)  (0) 2008.09.09
월-E  (0) 2008.08.20
타인의 삶  (0) 2008.08.05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usic and Lyrics)  (0) 2008.07.24
라빠르뜨망(L'appartement)  (0) 2008.07.15
Posted by 몽땅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