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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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6.25 어웨이 프럼 허(Away from her)

한 사람이 남녀간의 사랑을 동시에 몇 명의 대상과 나눌 수 있을까?
여친이나 남친이 여러 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여러 명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나보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진짜는 한 명뿐이다.

이 영화에서 치매환자 피오나(줄리 크리스티)는 남편 그랜트(고든 핀센트)와 요양원에서 알게 된 치매환자 오브리를 모두 사랑한다.
오브리에게 마음이 가 있는 동안은 남편에게 무심하다.
그러다 어쩌다 정신이 돌아오면 남편을 사랑한다.
어찌 보면 피오나가 이중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매 순간 진실했다.
다만 온전한 정신이 아니다 보니 자신의 과거와 남편을 기억하지 못한 것 뿐이다.

피오나는 오브리를 다정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손을 잡아주고, 케익을 앞에 놓아 주고, 휠체어를 밀어주는데, 내 눈에는 딱히 이성간의 사랑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모성애를 보는 기분이었다. 오브리가 보이지 않자 피오나가 생기를 잃고, 오브리가 그려 준 자신의 초상화를 망연히 바라보는 모습에서는 이성간의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복합적인 사랑이라고 말하면 어떨까? 살아 있는 인간에게 남아 있는 그 무엇, 타인과 나누고 싶은 그 무엇이 인간의 본성인 사랑의 감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그 사랑의 감정은 연민이 될 수도 있고, 우정이나 모성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내 눈에 딱히 이성간의 사랑이라고 보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두 사람 사이에 스킨쉽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며 내가 걱정한 사람은 피오나가 아니라 그랜트였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어떤 종류의 사랑이 되었든 사랑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자신을 남 대하듯 할 때 얼마나 기가 막히고 가슴이 아팠을까?
아무리 피오나에게 병자라는 명분이 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은 상처를 안겨주는 일이다. 그 아픔은 이해를 뛰어넘는 것이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어릴 때 공기와 고무줄을 아주 잘했다고 자랑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하면서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눈빛과 말에 생기가 돌았다. 비단 공기와 고무줄 뿐이겠는가. 그 이상의 무엇들이 있겠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이다. 이젠 거기에다 한 마디 더 보태야겠다. 아무리 치매에 걸려도 마음은 청춘이라고.

영화가 마무리될 즈음, 오브리도 집으로 돌아가고, 피오나도 헤어짐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남편을 제대로 알아보고 남편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오브리는 기억도 못한다. 다행히 그랜트가 피오나를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다. 피오나가 오브리에게 간다면 피오나에게는 나쁜 일이 아니겠지만 남편 그랜트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남은 생을 쓰라림과 회한으로 보내지 않겠는가.

이 영화는 마음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다. 피오나와 오브리의 연애 사건을 통해 피오나, 그랜트, 오브리, 오브리의 아내 마리안의 내적 움직임을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영화가 참 좋은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그랜트나 마리안과 같은 정상인들이 자기 자신을 위주로 결정하지 않고 약자인 환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 위주로 결정하였다는 점이다. 꼭 환자가 아니더라도 타인을 배려하는 결정은 아름다운 것 같다. 잔잔한 감동과 함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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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땅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