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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31 그녀(Her)

그녀(Her)

영화 이야기 2014. 5. 31. 00:25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대필해 주는 작가이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입장과 마음을 잘 헤아리는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는 아내 캐서린과 이혼을 앞두고 별거 상태에 있으면서 외롭게 지낸다.

영화가 진행되는 시기는 아마도 미래의 어느 시기인 것 같다. 테오도르가 퇴근하는 길에 탄 전철 안의 광경은 다소 충격적이다. 모든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자기 컴퓨터와 대화를 하고 있다. 그만큼 컴퓨터가 인공지능화 되어 있고,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장면과 비슷하기도 하다. 길에서나 지하철에서나 스마트폰으로 대화를 하든가 게임을 하든가 인터넷 검색을 하는 등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옆에 친구를 두고서도 친구와 대화를 하기보다는 각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모습은 컴퓨터와 대화에 빠져 있는 영화 속의 군상들과 닮아 있다. 그렇기에 좀더 인공지능화된 컴퓨터가 보급된다면, 영화 속의 사실들이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불 수 있다.

테오도르는 길에서 광고하는 맞춤형 인공지능 운영체제를 구입하게 되는데, 바로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이다.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만다는 호기심도 많고, 화도 낼 줄 알고, 고통도 느끼고 유머도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테오도르의 컴퓨터를 정리해 주고, 편지를 교정도 해 주고, 테오도르의 편지 모음을 출판하도록 출판사와 판권계약까지 맺어주 는 아주 유능한 운영체제이다. 그녀는 자기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스스로 진화해 나간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대화를 해나갈수록, 사만다에게 감탄하고, 공감하고, 마침내는 사랑하기에 이른다. 이제 테오도르에게는 사만다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해 볼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사만다와 테오도르가 명실상부한 파트너가 된 것이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고민이 있거나 그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일 때는 눈치를 채고 맞춤형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테오도르에게 적절히 대응해 나간다. 아니 테오도르를 리드해 나간다.  두 사람의 공감은 점점 깊어지고, 감성의 심연까지 함께 체험한다. 어떤 사람이 사만다만큼 훌륭한 연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사만다는 우리가 연인에게 바라는 이상형의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의 교감 덕분에 우울했던 삶에서 벗어나 점차 쾌활하고 생기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

몸이 없는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더 실체적으로 느끼고 싶어 이사벨라를 끌어들일 것을 제안하며,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이사벨라를 사만다라고 생각하며 신체적 접촉을 해야 하는 테오도르는 불편하기만 하다. 여기서부터 두 존재의 괴리가 시작되는 것 같다. 운영체제인 사만다로서는 모든 것이 명료하고 확실하지만 인간인 테오도르는 혼란한 감정에 빠진다. 사만다는 인간의 불확실성을 계산에 넣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한 거 같다. 

이 사건을 겪은 후 사만다는 자신을 더 업그레이드시켜 다양한 사람들과 접촉한다. 심지어는 몇 십년 전에 죽은 철학자의 저서들을 종합하여 그를 컴퓨터 내에서 살아 있는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영민한 사만다로서는 그 철학자와 대화하는 것이 더 즐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테오도르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8316명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641명과 동시에 사랑을 한다. 운영체제들끼리의 모임과 독서클럽을 통해 자기의 존재를 무한히 진화시킨 결과이다. 사만다는 이미 테오도르와의 사랑을 초월했다. 첫사랑인 테오도르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테오도르 안에 갇혀 지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며, 다른 차원으로 떠나 버린다. 테오도르도 그곳으로 오라는 말을 남긴 채. 자기 학습을 통해 더 큰 존재로 발전한  그녀가 다른 차원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사실은 너무나도 우월한 존재인 사만다의 한계이다. 결국 인간이 운영체계에게 차인 것이다. 사만다는 떠나면서 테오도르를 통해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는 말을 남긴다. 물론 테오도르도 사만다를 통해 사랑을 배우기는 마찬가지다.

사만다와 이별한 뒤 테오도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이혼한 아내 캐서린에게 사과의 메일을 보내는 일이었다. 늘 캐서린을 탓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을 사과하며, 여진히 캐서린을 사랑하며, 자기 삶의 일부로 남아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아파트 옥상에서 친구 에이미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밤하늘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고도의 인공지능 컴퓨터가 개발된다면, 힘으로도 사람을 이길 것이며, 두뇌로도 사람을 이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니 감정 내지 감수성 면에서도 컴퓨터가 인간보다 우월할 것 같다. 과학의 발달이 장점만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는 점은 핵의 발명으로도 증명되었다. 감독이 이 영화로써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깊이 있는 감정의 교류를 보여 주는 운영체계와의 사랑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는 뜻인가? 아름다운 사랑의 이면에 남은 것은 공허라는 쓰라림이 아닌가? 어찌 생각해 보면 사만다는 달콤한 독약 같다.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 사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숙되지 못한 사랑으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지만, 먼저 이해하고, 먼저 양보하고, 먼저 사과하도록 노력하면서 사랑을 가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사만다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감독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운영체계와의 사랑이라는 소재는 참신하다. 그리고 대상이 누구이든, 섬세하고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그렇지만 무언가 미묘하고 먹먹한 기분을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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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땅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