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랑 놀자

여주인공  테리(아네트 베닝)는 말한다. 우리 불장난하고 있는 거 같아요.
불장난과 사랑의 차이는 무얼까? 시간의 길고 짧음일까? 아니면 정말 장난으로 사귀는 걸까? 어쩜 두 사람 모두 약혼자가 있기 때문에 일종의 죄의식을 느껴서 그렇게 말한 것일까?

테리와 마이크(워렌 비티)는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고, 비행기가 사고가 나자 같은 배를 타게 된다.

비행기에서 마이크가 테리와 이야기하고 싶어 잔꾀를 부리는 모습을 보며, 바람둥이 기질이 도졌나보다 했다. 테리는 마이크에게 그닥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마이크는 테리가 가는 곳마다 우연인듯 나타난다. 필이 꽂혀도 단단히 꽂힌 것 같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테리도 마이크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테리가 배에서 불장난을 하고 있는 거 같다는 말을 할 때만해도 정말 그런 건가보다 생각했다. 그러면서 마이크가 왜 저렇게 주책을 부릴까 라고 생각했다.

뉴욕으로 되돌아와 테리와 마이크가 헤어지면서 약속을 한다. 석달 후에, 5월 8일 12시 2분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만나기로 한다.

평소의 생활로 돌아간 테리와 마이크에게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인다. 마이크는 약혼녀 린과 헤어지고, 테리도 약혼자 피어스 브로스난과 헤어진다. 그리고 마음은 온통 약속날짜에 가 있다. 일상생활의 변화가 있다는 것은 마음의 변화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 걸 보면 두 사람은 불장난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약속 날짜가 되자 마이크는 일찌감치 약속장소에 가서 기다리는데, 그만 테리에게 사고가 나고 만다. 약속시간에 맞춰 도착하려고 애를 쓰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테리는 병원으로 실려가고, 밤 열두시가 될 때까지 테리를 기다리던 마이크는 실망하여 돌아간다.

못만나더라도 서로 연락하지 말자고 약속했는데,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안타까웠다. 테리가 마이크의 숙모 집을 방문했을 때 숙모가 좋아하던 스카프를 보며 테리가 잘 어울린다고 칭찬한 적이 있는데, 그 스카프가 마이크가 테리를 찾아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숙모는 죽으면서 그 스카프를 테리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마이크는 숙모의 집에서 숙모와 편지 왕래를 하던 테리의 주소를 발견한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마이크는 테리를 찾아오고, 테리는 태연한 듯 마이크를 맞지만, 자신의 다리가 온전치 못한 것 때문에 감정적으로 솔직하지 못하다. 자꾸 머뭇거리는 마이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작별인사를 하는 테리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테리의 태도에 야속함을 느꼈다. 다 털어 놓을 것이지. 영화는 끝나가는데, 도무지 진전이 없으니, 보다가 화까지 났다. 다행히 마이크가 테리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낸 것 같다. 아마도 테리의 휠체어를 발견한 게 아니었나 싶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솔직한 대화를 나누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두 사람이 다시 맺어지지 않았다면 남은 여생을 독신으로 지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데, 나만의 생각일까? 누구를 사랑하는지 분명히 아는데,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면 그건 거래가 아닐까? 다행히 영화의 두 주인공은 거래를 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신기하게 느껴진 점은 사랑이 언제 어디가 될지 모르는 곳에서 우연히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습지만 한 쪽 사람의 과잉반응으로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먼저 발견하고 먼저 댓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 작업이 주책이나 장난처럼 보일 수 있을지라도 실은 진실한 마음의 표현, 진실한 욕구의 분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사랑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거기에 응하는 진실한 반응이 필요하다. 태리와 마이크의 사랑과 같은 사랑을 두고 사람들은 운명적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이 영화를 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불장난도 운명적 사랑이 될 수 있다가 아니라, 운명적 사랑도 불장난으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암튼 사랑을 찾은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인 것 같다.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트 온 스캔들(Notes on a Scandal)  (0) 2008.09.16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0) 2008.09.11
월-E  (0) 2008.08.20
나의 왼발  (0) 2008.08.12
타인의 삶  (0) 2008.08.05
Posted by 몽땅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