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통일되기 5년 전, 동독의 사회상을 그린 영화다.
당시의 동독인들은 자유도 없고, 모든 행동과 대화가 감시당하는 사회에서 무슨 의미로 살아왔을까? 그 어둠의 터널을 견뎌낸 그들이 존경스럽다.
그런 와중에도 예술은 있었다. 체제를 비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허용되었나보다.
게오르그 드라이먼은 작가였다. 그리고 아내 크리스타 마리아 질란드는 인기있는 연극배우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아파트가 도청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순진파이다.
우익작가인 드라이먼 주위에는 동독의 실상을 서방에 전하려는 뜻을 품은 사람들이 있다.
드라이먼은 그 중심에 서게 되고, 자기 아파트에 타자기와 원고를 감추게 된다.
드라이먼의 아파트를 도청하는 일을 맡은 비즐러는 유능한 감시요원이다.
그런데 드라이먼의 아파트를 도청을 하면서 조금씩 변하게 된다.
드라이먼의 시집을 가져다가 읽고 감명을 받는가 하면
드라이먼의 피아노 연주에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장관의 호출을 받고 몸을 바쳐야 하는 크리스타를 직접 만나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넌지시 비친다. 그러면서 당신은 훌륭한 배우라고. 자부심을 가지라고 추켜 세운다.
가장 놀라운 일은 국가안보부에서 드라이만 집에 감춰져 있는 타자기를 찾기 위해 드라이먼의 집을 수색할 때이다. 약자인 크리스타를 심문하여 타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요원들이 드라이먼 집으로 쳐들어가는데, 비즐러가 그들보다 한발 앞서 달려가 타자기를 찾아내어 치워 놓는다. 타자기를 찾을 수 없게 된 안보부 사람들은 드라이먼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도청도 끝을 낸다.
비즐러는 도청업무를 제대로 못했다며 우편물 감시부로 좌천된다.
5년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다. 드라이먼은 그때까지 새 작품을 쓰지 못했다. 어느 날 문서보관소에 가서 자신을 도청한 기록들을 읽다 자기 집 도청요원이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서 영감을 받아 '선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라는 작품을 쓰고, 도청요원 H.G.W. XX/7에게 헌정한다.
공산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냉정한 비즐러가 어쩌다가 반대파 사람들을 돕게 되었을까? 어린이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도 아닌 그가 변하는 걸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 속에는 다 선한 면이 들어있어서일까. 체제가 그러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을 맡게 되었고, 그런 일을 하다보니, 그런 사람이 된 것이지, 원래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다만 주변환경에 의해 본모습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들(드라이먼과 크리스타, 그 외 그들의 주변인물들)이 사람답게 사는 모습을 보며 본래의 착한 모습을 조금씩 회복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즐러가 원래 악한 사람이었다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만일 그렇다면 그 편이 더 드라마틱하다. 선하지도 않은 사람이 단지 선한 타인들의 삶을 보고 선하게 변할 수 있다면 세상이 좋아질 가능성은 더 커지지 않겠는가. 어느 쪽인지 모르겠지만, 비즐러가 변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며, 인간 승리이며, 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누군가의 타인이다. 말하자면 누구나 누구에겐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선한 면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타인들도 선한 면을 볼 것이며 닮아갈 것이다.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 이 영화가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2년 후 비즐러는 드라이먼의 신간서적 광고물을 보게 된다. 서점으로 들어가 그 책을 뒤져보다가 그 책이 자기에게 헌정되었다는 걸 알고 매우 기뻐하며, 구입한다.
비즐러도 왜 드라이먼이 자기에게 이 책을 헌정했는지 짐작할 거다.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한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은 영원한 벗이 되었다.
참 감동적이며,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인간에게 희망을 걸 수 있게 만드는 멋있는 영화이다.
헌정 부분을 보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작품 피아니스트가 생각났다. 주인공 스필만을 도와준 독일 장교는 끝내 포로수용소에서 병사했다지. 참 아쉬웠는데, 이 영화가 그 아쉬움을 상쇄해 준다.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E (0) | 2008.08.20 |
---|---|
나의 왼발 (0) | 2008.08.12 |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Music and Lyrics) (0) | 2008.07.24 |
라빠르뜨망(L'appartement) (0) | 2008.07.15 |
잉글리쉬 페이션트(The English Patient) (0) | 2008.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