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랑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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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0.19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몬타나의 아름다운 강 빅 블랙풋 강가에 살던 맥클레인의 가족 역사를 큰아들 노먼의 회고록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아버지 리버랜드 맥클레인(톰 스커릿)은 목사이다. 그는 강에서 낛시하는 것을 좋아하며, 두 아들 노먼(그레이그 셰퍼)와 폴(브래드 핏트)에게 어렸을 때부터 낛시를 가르쳐 준다. 그들에게 있어 낛시는 종교와 같이 경건한 무엇이다.

아버지가 목사이다 보니, 두 아들은 아무래도 엄격한 교육을 받았고, 무의식 중에 목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는 예상 외로 종교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아버지가 설교하는 모습 조금과 식사전후에 기도하는 모습 정도.

큰아들 노먼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몇 년간 집을 떠나 있고, 동생 폴은 고향에서 신문기자를 하며, 여전히 낛시를 즐긴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4박자 플라잉 낛시법을 개발하여 자기 만의 고유한 낛시법을 창안해 낸다. 브래드 핏이 아주 젊었을 때의 모습으로 나오는데, 장난기 넘치는 눈빛이 보는 사람에게 웃음을 머금게 한다. 연기인지, 정말 본모습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노먼이 공부를 마치고 귀향하여 폴과 낛시를 하러 가는데, 노먼은 폴의 유연한 낙시질을 보면서 자기보다 훨씬 앞서 간다는 걸 느끼며 질투를 느낀다. 그런데 훨씬 앞서 가는 건 낛시만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이나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도 노먼보다 능숙하다. 폴이 가는 곳은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다. 거기에 비하면 노먼은 공부는 더 많이 했을지 모르지만, 무언가 부족한 샌님같은 인상을  풍긴다. 

식사 시간에도 폴이 나타나면 화재가 만발하는데, 폴이 자리를 떠나면 침묵이 흐른다. 그러다가 엄마는 엄마 볼일을 보고, 아버지는 자기 서재로 간다. 혼자 남는 건 노먼.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서재에서 읽는 시를 노먼이 같이 외운 후부터 아버지와 말문이 트인다.

같은 형제인데도 신중하고 조용한 노먼과 재기넘치고,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폴은 매우 대조적이다. 노먼은 아버지와 많이 닮아 있고, 폴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들 삼부자를 엮어주는 낛시가 있다. 삼부자가 강에서 낛시 릴을 던지는 모습은 마치 음악연주를 보는 느낌이었다. 평화롭고, 아름답다.

폴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던 댓가를 치른다. 함께 어울리던 불량배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이다. 아버지 맥클레인은 폴의 죽음을 가슴에 묻은 채 더 이상 거론하지 않지만 폴에 대한 사랑은 훌륭한 설교로 녹아 나온다. "필요할 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거의 돕지 못한다. 무엇을 도와야 할지도 모르며, 때로는 그들이 원치 않는 도움을 준다. 이렇게 서로 이해 못하는 사람과 산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완전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있다." 과연 완벽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멋있게 느껴지는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노먼은 홀로 낛시를 하며 독백을 한다. 먼저 죽은 이들과 교감하고 있다고. 낛시를 하고 있으면 모든 존재가 그의 영혼과 기억 그리고 빅 블랙풋 강의 4박자 리듬, 고기가 물리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모두 하나의 존재로 어렴풋해지는 것 같다고. 그러다가 결국 하나로 녹아든다고. 그리고 강이 그것을 통해 흐른다고. 바위들 밑에 말씀이 있고 말씀의 일부는 그들의 것이라고. 자신은 강에 넋을 잃고 있다고.

이 정도라면 가히 종교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종교적인 행위가 아닌 낛시를 통해서지만, 영혼들과 교감하고, 하나로 녹아든다면 그곳이 바로 지성소가 아닐까? 흐르는 강물을 통해 영혼들과 자연과 물아일체를 느끼는 그야말로 달관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문학교수다운 아름다운 필치가 여운을 남긴다.

Posted by 몽땅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