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랑 놀자

불멸의 연인

영화 이야기 2008. 6. 13. 22:52

이 영화는 루드윅 반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소나타 협주곡 등을 배경음악으로 삼아 그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영화의 장면과 음악을 매치시켜 베토벤이 그 곡을 작곡했을 당시의 심정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도 있고 각 장면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볼 수도 있어 좋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며 다소 황당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불멸의 연인 때문이다. 그 여인은 영화의 앞부분에서 베토벤이 직접 독사와 같은 여자라고 욕을 했던 여인(조안나 베토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실 동생 카스파의 아내였다. 아마도 베토벤과 조안나는 몰래 만남을 가졌던 것 같고, 임신까지 했다. 임신의 시기가 카스파와의 결혼 전이고, 아기가 베토벤의 아기인걸 보면 이전부터  서로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베토벤이 동생이 조안나와 결혼하는 걸 반대하고 방해했 던 것 같다.

원래 베토벤과 조안나 두 사람은 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남은 생을 같이 살기로 했는데, 조안나가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렸다. 이때 베토벤이 느낀 느낌은 무엇일까? 어디선가 후기를 읽었는데, 자존심이 상했단다. 사랑에 자존심이 있던가? 난 배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버림받아서 화가 났던 것 같다. 그래서 호텔방을 의자로 때려 부수고 난리를 피웠던 것일 것이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오해였다. 조안나는 베토벤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떠난 것이었으며, 베토벤은 조안나가 자기를 버리고 먼저 떠났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베토벤이 도착하기 앞서 보낸 편지를 조안나가 읽기만 했어도 이런 오해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8년 후 베토벤은 동생 집을 찾아가 조안나를 창녀라고 비난하는데, 베토벤의 입장에서는 그닥 틀리는 말도 아니다. 하지만 입밖으로 내기는 어려운 말인데, 질투에 눈이 멀어 그렇게 함부로 말했던 것 같다. 자기의 동생과 자기의 연인과 자기의 아들이 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꼴을 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동생이 죽은 다음 왜 화해하지 않았을까? 화해라기보다는 용서가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자기를 따라오지 않고 동생에게 되돌아간 조안나를 용서하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 베토벤은 조카 칼(아들)의 양육권을 두고 조안나와 법정싸움까지 벌인다. 속내대로 이야기하자면 부부싸움이나 다름 없지 않은가. 칼의 이야기처럼 셋이 함께 사는 방법을 강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증오로 눈이 먼 어른들보다 어린 칼이 훨씬 지혜로운 것 같다. 아무리 용서하기 힘들었다고 하지만 이때야말로 베토벤에게는 두번째 기회였으며, 그는 그 기회를 놓친 것 같다. 

그리하여 베토벤은 평생 조안나를 저주하고 미워하며 혼자 외롭게 산다. 이 부분은 정말 불쌍하고 동정이 간다. 그런 깊은 슬픔과 고통이 승화되어 명곡이 탄생한 게 아닐까 싶다. 아무리 불후의 명곡을 작곡했지만 그래도 베토벤은 바보다. 자신의 사랑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용서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하긴 인생은 사랑 증오 용서 배반 이런 일들로 둘러싸여 있다. 베토벤이라고 해서 보통의 기준을 뛰어넘는 재주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았겠지. 그래서 그에게 더 연민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너그러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나마 다행인 건 마지막에 두 사람이 화해한 점이다. 임종 전에 조안나를 찾아 만났고, 조안나는 교향곡 9번 연주를 들으며 베토벤을 용서했다. 베토벤은 유서에다 불멸의 연인에게 유산을 남긴다고 했는데, 그렇게 죽으면서도 못잊을 그 여인을 왜 그리 미워하고 홀대했는지 안타깝다. 그나마 아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며, 아마도 많은 위안이 되었을 것 같다.

베토벤이 사랑한 조안나가 어떤 미덕이나 매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무엇이 그로하여금 조안나를 사랑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일단 사랑했다면 정말로 사랑해야지. 그의 고통은 그가 불러들인 환상들 때문은 아닌지.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환상에 젖어 사는 건 아닌지. 너무 쉽게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살아 있다면 어떤 왜곡현상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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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땅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