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랑 놀자

별 기대 없이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의미심장하다. 그 긴 이야기는 뒤에서 이어가기로 하고 우선, 좋은 영화를 건진 거 같아 기분이 좋다.

남자 주인공 프랭크는 아내 수잔, 딸 제시카와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불임이라는 걸 알게 되고, 혼란을 겪는다. 프랭크는 수잔에게 속임을 당했다는 데 대해 분노하며, 수잔을 용서하지 못하고 집을 나간다.

프랭크는 목표에 따라 스케줄을 작성하여 차례대로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는 시간의 효율적 사용이라든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면 충동에 끌려 살 수 밖에 없다든가, 자신이 주도권을 갖고 우선순위를 정함으로써 승리할 수 있다는 이론을 강조하던 사람인데,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그의 삶이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그는 충동, 우연, 열정, 혼돈을 거부하며 살았는데도 결국은 카오스에 빠지게 된 자신을 보며 자신이 평소에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깨닫고, 자신의 충동에 따라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한다. 강단에서도 사람들에게 충동과 열정에 따라 행동하며 새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이전의 강의와는 정 반대되는 말들이다. 그는 발가벗고 하키경기장을 뛰어다니는가 하면, 자기가 남들에게 극구 말리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가 하면, 제시카의 의학적 아버지 버디를 죽이겠다며 총을 구입한다. 그는 이런 일들을 하면서 해방감을 느끼며, 햇빛 속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카오스 이론이란 무질서해 보이는 혼돈 상태에도 논리적 법칙이 존재한다는 이론으로서, 이 연구의 목적은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능한 현상 속에 숨어 있는 정연한 질서를 밝혀내어 새로운 사고방식이나 이해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혼돈 속에 숨어 있는 질서정연한 자연현상을 밝혀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카오스 이론은 수학 물리학 기상학 생물학 의학 천문학 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새로운 사고방식의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론을 프랭크의 인생에 대입시켜 본다면 프랭크의 카오스적 인생에도 숨겨진 질서가 있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프랭크는 모든 우연과 혼돈상태를 극복하고 수잔과 제시카와 다시 합치게 되는데, 그 계기는 딸 제시카의 아빠에 대한 사랑이었다. 제시카가 아빠를 걱정하고 기다리고 만나서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프랭크의 마음이 녹기 시작한 것이다. 양극단을 달리던 프랭크와 수잔의 결혼생활이 유지될 수 있게 만든 질서는 다름아닌 사랑과 진실이다. 카오스 속에서도 사랑과 진실이라는 법칙이 엄연히 존재하면서 두 사람을 이끌었던 것이다.

이 영화에는 좋은 어록이 많이 나온다. 그것은 누군가의 깨달음의 결과일 것이다. 극본을 쓴 사람이 다니엘 타플리츠인데, 아마도 상당히 명상적인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랑과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아는 상식이겠지만, 우리의 카오스적 삶에서 사랑과 진실을 나침반으로 삼아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사람들은 드문 것 같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주인공 프랭크를 통해 혼돈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한 것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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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땅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