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시공의 한계가 있는가?
사랑에 허락되고 허락되지 않는 종류가 있는가?
이 영화를 보며 내내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캐서린(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은 제프리의 아내다.
그런데 헝가리 귀족 알마시(랄프 파인즈)와 사랑에 빠진다.
실은 알마시가 기회를 노려 캐서린에게 댓쉬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알마시가 먼저 꼬신 것이고, 캐서린은 끌려 들어간 것이다.
캐서린 열정적인 사랑을 하게 만든 것이 무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알마시와 불타는 사랑을 한다.
아마도 캐서린의 마음을 열게 만든 것은 폐부를 찌르는 알마시의 열정적 눈빛이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사실 누가 먼저 시작하였느냐는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이 악마와 같은 성질을 지닌다는 것이다.
불속인지 알면서도 한없이 한없이 빠져들게 되고,
종래에는 그 불속에서 다 타버려 소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을 보면
사랑은 되느냐 안되느냐는 윤리적 문제를 생각하기 이전에
자기도 모르는 새에 느끼게 되는 역동적인 감정인 것 같다.
일단 불꽃이 튀면 나이가 몇인지, 결혼을 했는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와 같은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사실 그것들은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과 같은 것으로서,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과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감추어 준다.
말하자면 이 껍질들은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얻은 부차적 요소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몇 겹의 껍질들을 둘러쓰고 사는데
사랑의 눈은 그 껍질을 뚫고 속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사랑은 이 부차적 요소를 무시하고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따르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을 맹목적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사고를 당한 캐서린은 혼자 동굴 속에서 알마시를 기다리다 죽는데
알마시에게 편지를 쓰고, 알마시를 생각하는 시간동안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두렵기보다는 행복하였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알마시는 화상을 심하게 당하고 오랫동안 수도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그 역시 캐서린과의 사랑을 되돌아보며 힘을 얻었을 것 같다.
열정을 불태운 시간은 짧았지만, 그에 대한 추억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장소와 시간이 다른 곳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반추하며 행복함에 빠져 지냈으리라고 생각되는데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이다), 사랑은 시공까지 초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상에서의 사랑이 내세까지 이어질까?
이 영화에서 가장 멋있는 장면을 꼽으라면, 인도인 병사 킵이 한나(줄리엣 비노쉬)에게 성당 안의 그림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나가 밧줄에 매달려 이리 저리 움직이며 그림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두번째로 멋있는 장면은 비오는 날 친구들이 알마시를 들것에 태운 채 비를 맞을 수 있도록 이리 저리 정원을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알마시의 소원 중 하나가 얼굴에 비 맞는 것이었는데, 그것을 기억한 수도원 친구들이 기꺼이 그 소원을 들어 준 것이다.
두 장면은 애석하게도 알마시와 캐서린의 사랑과 연관되는 장면은 아니었지만, 인생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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