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랑 놀자

넷플릭스 오리지날 영화로서, 시즌 1은 총 1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목에 이끌려 보기 시작하였는데, 의외로 흥미롭다. 10편의 엔딩에서 주인공이 비행기에서 추락했는데도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남으며, 함께 추락하여 사망한 동승자들을 살려내는 것을 보면서 다음 시즌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주인공의 정체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이다. 군중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자기는 하일라(말씀)’라고,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밝힌다.

시리아는 역사적으로도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지금도 내전 중이다. 시리아 정부는 이슬람교와 기독교를 허용하는데,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가 대립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슬람교도들끼리도 수니파와 시아파와 기타 종파로 갈려 서로 대립하고 충돌한다. 이러한 분열과 분쟁으로 인한 내전 때문에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난민들이 대거 발생하였다.

그런데 주인공은 홀연히 분쟁의 중심지인 다마스쿠스에 나타나서, 인류는 조타수를 잃은 배와 같다, 자기가 아는 것에 의지하지 말고,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중들은 그를 '알마시히(al-Masih)라고 부르며 추종하기 시작하는데, 알마시히는 메시아를 의미하며, 메시아는 구세주를 뜻한다.

이슬람 전통에서 알마시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호칭이라고 한다.  BBC는 알마시히가 자신이 세상의 메시아라고 선포하면서, 반그리스도 사상을 주장하는 거짓 예언자 다잘(Dajjal)과 연루되어 있으며, 그를 가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주인공의 풀네임이 al-Masih ad-Dajjal 이 아니라고 밝혔다.

알마시히는 그를 따르는 이천 여명의 난민들을 이끌고 이스라엘 접경지역으로 간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알마시히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주목을 받는다.

이스라엘군은 그를 체포하여 감금시킨다. 이스라엘 특수요원 다만(하비람)은 투옥된 알마시히를 만나 대화를 한다. 다만은 알마시히가 자신의 삶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며, 둘이 나눈 대화가 담겨 있는 취조영상을 삭제한다. 그 뒤 알마시히가 사라지는데, 이 일로 다만은 직책을 잃게 되며, 알마히시를 추적하여 살해할 결심을 한다.

미국 CIA요원 갤러(에바)는 알마시히의 추종자들(followers)처럼 이스라엘에서부터 미국에 이르기까지 알마시히를 추적한다. 결국 멕시코 국경을 넘어 난민으로 미국에 입국한 알마시히를 만난다. 알마시히는 갤러를 그녀의 이스라엘 이름 에바로 부른다. 에바 역시 알마시히가 자신의 사적인 일까지 알고 있자 혼란스러워하지만, 계속 의심하며 뒤를 밟는다.

알마시히는 에바를 만났을 때, 에바가 일을 숭배(worship)한고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숭배를 하지만 숭배의 대상을 다르게 선택할 뿐이라고. 에바가 일을 숭배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고립(isolation)시키고 있다고.

갤러(에바)가 밝혀낸 정보에 따르면 알마시히의 본명은 파얌 골시리로, 부모는 유대인이며, 이란 국적이다. 아버지는 유대교, 어머니는 기독교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뒤 삼촌과 함께 이란에서 유랑생활을 한다. 갤러는 파얌 골시리가 정신병동에 수감된 적이 있음을 알아내고, 메시아 콤플렉스 환자라고 결론을 내린다.

2000 여년 전의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방 나사렛 마을의 목수 요셉의 아들로 왔다. 메시아라고 해서 공기 속에서 뿅 나타날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의 혈통을 통해 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알마시히가 파얌 골시리라는 이름으로 온 것이 그가 메시아가 아니라는 증거는 되지 않는다.

사실 알마시히는 자신의 정체를 다 밝혔고,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다 전했다. 자신이 메시지라고 밝혔는데,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한가? 메시아인지 아닌지가 왜 중요한가? 그가 메시아임이 확인되지 않아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가 틀렸으며,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가?

알마히시는 몇 가지 기적을 보여주는데, 기적을 보여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기적을 트릭 내지 마술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예수님 시대에도 그런 오해를 받았다. 보는 것을 믿지 못하고, 보아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보아도 믿지 못한다. 결국 자신이 투사한 것만 본다.

알마시히는 비공개적으로 미국 대통령을 만나 인류의 평화를 위해 전 세계에 배치된 모든 미군을 철수하라고 권한다. 대통령은 미군이 세계 평화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알마히시는 미군이 저지른 학살들을 언급한다. 한국의 노근리 사건도 포함해서.

알마히시는 유럽인들이 자신의 고향에 선을 긋고 국경을 만든 것도 언급하는데, 국경의 의미는 영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공간 속에서 종적 횡적으로 선을 그어 나누면서 자신과 타인을 분리(isolation)시킨다. 그 선은 국가가 될 수도 있고, 종교가 될 수도 있고, 민족이 될 수도 있고, 이념 내지 사상이 될 수도 있고, 신분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인 삶에서 더 깊이 따져본다면 마음속에서 어떤 선을 긋고는 나는 너보다 이만큼 더 잘났다고 생각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알마히시가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경계선을 철폐하고, 인류가 공존하고 상생하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는 온 인류가 하나로 일치 혹은 통합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예수님에 대해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만일 예수님이 내 삶에 실제 인물로 나타난다면 나는 알아볼 수 있을까? 자신 없다. 하지만 만일 예수님이 이 시대에 실제로 등장한다면 난민의 모습으로 오는 것이 가장 그럴듯하다는 생각은 든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메시아)로 믿고 고백하는 나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분이며, 나의 삶에 동행하신다는 것을 알고, 믿는다. 영화에 나오는 추종자들은 알마시히가 병을 치유시켜 주고, 어려운 문제에 해답을 제공하고, 문제를 해결해주리라고 기대하는데, 나는 그런 방식으로 예수님을 인식하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병을 치유시키셨고,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다. 그런 일들이 나의 삶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나의 문제를 안고 살고 싶으며, 해결 방안을 내가 선택하기 원한다. 나에게는 자유로이 선택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다행히 예수님은 나에게 다양한 옵션의 기회를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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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땅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