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우연히 클릭하여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전정보는 전혀 없는 상태였다. 영화를 보는 도중, 뭐 이리 지루한 영화가 다 있나 하며, 졸음이 와서 한잠 자고 일어나서 계속 보았다. 계속 보아야 할지 그만 두어야 할지 약간의 갈등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부터 집중하여 보기 시작하였다.
그게 어디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와 멋있다 하고 느껴진 어떤 장면이었던 것 같다. 혹시 올리버가 물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 보고 나서, 무언가 모를 여러 생각과 감정들이 뒤섞였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알아들었다. 그런데 그걸로 매듭지어지지 않는 무엇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 관한 감상평들을 찾아 읽었다. 나에 비해 훨씬 깊이 이해하고 있는 훌륭한 글들이 많았다. 그 글들을 읽으며, 이 영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그리고 그 글들 중에서 퀴어 영화라는 단정적인 단어를 보았다. 퀴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 검색해 보았다.
나는 내가 얼마나 무지한 사람인가 새삼 느꼈다.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들인지, 아니면 특수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정말 깊이있게 잘 풀어 놓았다. 그들에게 약간의 존경심까지 느낀다..
자세한 줄거리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궁금하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엘리오(티모시 샬라메)가 올리버(아미 해머)를 만나서, 서로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을 표현하고, 사랑(사랑이라고 인정하고 싶다)을 나누고, 헤어지고, 슬퍼하는 모습에 음악과 이태리의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져, 영화의 미학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감탄하였다.
감독 루카 구아다니오도 성소수자라고 한다. 그렇기에 퀴어 영화를 더욱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큰 성공을 거둔 것 같다. 셀 수 없는 상과 찬사를 받았다. 이 영화의 예술성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왜 나는 무언가 속임을 당하는 느낌이 들까. 그의 영화를 예찬하는 사람들에게 돌을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나의 솔직한 심정은 그렇다.. 감독은 영화라는 틀을 통해 자신의 어떤 주장을 펴고 있으며,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옳다 그르다를 내가 굳이 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그리고 사랑의 범위를 좀더 넓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윤리에 지나치게 구속되어 살고 있는 나로서는 한편으로 후련한 느낌마저 든다.
하느님은 창조를 완성한 후 참 좋게 보셨다고 한다. 하느님의 창조물을 생각할 때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자연의 장엄함인데, 당연히 자연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넓게 보면 인간도 자연의 일부겠지만, 아마도 하느님의 모습을 가장 많이 닮은 피조물은 인간일 것이다. 그런데 난 인간에게 실망을 많이 해서, 평소에 인간보다 식물이 고등한 생물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자연의 오묘함이 어찌 인간의 오묘함과 견줄 수 있겠는가. 자연의 신비가 어찌 인간의 신비를 능가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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