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몽땅연필 2008. 9. 11. 22:48

조제는 다리가 성치 못한 장애인이다. 집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고 싶을 때는 유모차를 이용한다. 집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세상 구경을 하는 게 아니다. 유모차 위를 담요로 덮어서 조제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며, 조제도 아무것도 못본다. 오죽하면 동네 사람들이 유모차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며 온갖 상상을 했겠는가. 바람 쐬는 게 뭐 그런지 모르겠다. 게다가 방어용 칼까지 가지고 다닌다. 조제에게 세상은 호랑이처럼 두려운 존재인 것 같다.

할머니가 끌던 유모차가 구르면서 쓰러지는 바람에 조제가 밖으로 나뒹굴게 되며, 우연히 지나가던 츠네오가 일으켜 준다. 츠네오는 할머니의 권유대로 조제네 집으로 가 밥을 먹는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츠네오는 조제의 집을 자주 드나들게 된다. 그런데 할머니가 츠네오더러 그만 오란다. 아마도 츠네오가 집에 드나들면서 보인 조제의 변화가 걱정스러웠을 것이다.

할머니가 세상을 뜨고 나서 츠네오는 조제의 집에 다시 찾아간다. 두 사람은 같이 산책도 하고 동물원에도 간다. 동물원에서 호랑이를 한참동안 구경하는데, 조제가 그런 말을 한다. 남자 친구가 생기면 손잡고 호랑이 보러 오고 싶었다고. 호랑이 구경은 조제가 세상을 마주대하겠다고 마음 먹은 걸 암시해 주는 것은 아닌지.

츠네오가 본격적으로 조제의 연인이 되어, 조제네 집에서 같이 살게 되는데,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츠네오의 예전 여자친구 카나에가 조제를 찾아와 장애인 주제에 자기 애인을 빼앗았다며 조제의 뺨을 때린다. 조제도 카나에의 뺨을 때리기 위해 손을 치켜 드는데, 유모차에 앉은 상태에서는 카나에의 뺨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러자 카나에가 몸을 굽혀 조제가 때리기 좋은 위치로 뺨을 갖다 대고, 조제는 카나에의 뺨을 친다. 두 여자가 다 만만치가 않다.

명절이 되어 츠네오가 부모님 계시는 집을 찾아가면서 조제도 동행한다. 조제는 아주 예쁘게 차려 입고, 먹을 것도 많이 준비하지만, 도중에 츠네오의 생각이 바뀌어 집으로 가지 않는다. 눈치 빠른 조제가 먼저 바다 구경 가자고 제안한다. 수족관이 있는 곳에서 잠을 자게 되는데, 조제가 한 말이 꽤 인상적으로 다가와 잊히지 않는다. 자기는 혹시 츠네오와 헤어지더라도 바닷속 깊은 곳의 조개처럼 물결따라 굴러다닐 거라고, 그곳은 너무 깊은 바다라서 깜깜할 거라고. 그런 곳에서 추억을 품은 채 한없이 한없이 굴러 다녀도 자기는 좋다고. 조제는 츠네오가 없는 삶은 다시 깜깜한 밤이 될 것이라는 걸 예감하고 진지하게 말하는데, 그 옆의 츠네오는 그 말을 못듣고 잠에 빠져 있다. 그걸 보더라도 조제의 예감이 예감으로만 끝나지 않으리라는 걸 짐작하게 한다.

어느 날 츠네오가 외출하려는데, 조제가 이별선물이라며 책을 한 권 준다. 츠네오도 되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책을 받아든다. 왜 그러느냐는 한 마디 질문도 없이. 아마도 그런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은 이미 서로를 파악하고 있었나보다. 이제 이별할 때가 왔다는 것도.

바닷가에서 츠네오가 조제를 업고 힘들어 할 때에 이미 복선은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츠네오에게는 조제가 너무 무거웠나보다. 서로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장애라는 짐 때문에 헤어져야 하다니 안쓰럽다.

츠네오와 헤어진 뒤 조제는 전동 휠체어를 샀다.  이제 스스로 장을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홀로서기를 하게 된 것이다. 영화 제목으로 치면 물고기처럼 세상을 헤엄치며 살아가게 된 것이다. 제목에 조개가 안들어가고 물고기가 들어간 것은 나름 의미심장한 뜻이 있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밀어주는 유모차가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전동 휠체어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면 츠네오와의 사랑일 것이다. 조제는 앞으로도 더욱 씩씩하게 살 것이며, 또다른 사랑도 하게 될 것이다. 츠네오와의 사랑은 추억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조제의 새로운 삶의 기폭제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츠네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주인공은 조제니까. 게다가 츠네오는 특별히 눈길을 끌 만한 점도 없다. 조제와 헤어지고 나오는 길에 예전의 여자 친구와 동행하는 걸 보면서, 참 시시한 친구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츠네오가 울긴 왜 울었을까. 제풀에 겨워 운 건가?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담담하고 섬세하게 잘 만든 영화이다. 마치 한 편의 소설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