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카오스 이론 2 - 무질서 속의 질서

몽땅연필 2008. 6. 22. 21:33

영화 카오스 이론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 등장인물들의 솔직함에 대해서만 이야기 해 보고 싶다.

수잔이 평생 남자가 세 명 있었다는 걸 버디에게 말하는 걸 보며 좀 놀랐다.
버디는 이 대답에 만족하지 않고 수잔의 딸 제시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밝히도록 요구한다.
그래서 버디가 생물학적 아버지임이 밝혀진다.
수잔은 그건 실수였고, 사랑이 아니었으며, 프랭크를 사랑한다고 분명히 밝힌다.

영화는 딸 제시카의 결혼으로 시작되는데,
아버지 프랭크는 신랑에게 제시카가 전에 제이크리라는 청년과 2주동안 침대에서 뒹군 적이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서.

정말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겠지만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마치 태연히 폭탄의 안전장치를 뽑듯이 약점을 노출시키는 신부의 아버지 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가.

제시카와 신랑 에드워드의 결혼식을 보면서 든 생각은 결혼식에 모인 하객들은 아마도 프랭크가 제시키의 친아버지가 아니며, 생물학적 아빠가 버디라는 걸 모두 알고 있으리라는 점이다. 게다가 버디는 신부의 아버지 옆에 떡 하니 붙어 앉아 있다. 이는 그들의 사회가 프랭크 가족의 특이한 이력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뜻이 되겠다.

이 몇 가지 내용만으로도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들은 형식이나 외적인 사건을 중요시하지 않고 내면의 룰 내지 솔직성을 중요시하는 것 같다.
불합리해 보이는 외적 사건들도 자신과 상대방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통해 잘 정리하고 해결해 낸다.

이혼 재혼이 잦은 서양의 가족 구성은 매우 복잡하다. 그런데도 엄마가 다른 형제, 아빠가 다른 형제들이 한 가족을 이루면서 잘 지낸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배다른 형제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기보다는 불화를 일으키는 것 같다.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도 많이 일어나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적인 질서와 체면, 자존심을 중요시하며, 진실을 밝히거나 용서를 구하거나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한다. 이처럼 사람간의 갈등을 풀어나가는 데 미숙하기에 사회에서 어울려 사는 데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속임수, 오해, 무책임, 충동적 행동과 같은 무질서에도 불구하고 하나 하나 실타래를 풀듯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걸 보며 영화가 말하는 카오스 이론에 공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질서 속의 질서에 감탄하게 된다.

영화가 말하는 카오스 내의 질서는 진실과 사랑인데, 솔직함은 진실의 또다른 이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